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 (문단 편집) === 공화당 === ||<-2><#E81018> {{{+2 '''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'''}}} || ||<#E81018,#E81018> {{{#fff '''대통령 후보 지명자'''}}} ||||<#E81018> {{{#fff '''부통령 후보 지명자'''}}} || ||<-4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빈 가로 이미지.svg|width=100%]]}}} || ||<-4><#E81018,#E81018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0" {{{+1 [[배리 골드워터|{{{#fff '''배리 모리스 골드워터'''}}}]]}}}[br]애리조나 주 연방 상원의원}}}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0" {{{+1 [[윌리엄 E. 밀러|{{{#fff '''윌리엄 에드워드 밀러'''}}}]]}}}[br]뉴욕 주 연방 하원의원}}} ||}}} || ||<-2> [[파일:Goldwater_Miller_1964_campaign_logo.svg|width=100%]] ||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eKeDW_Ib9I8)]}}} || || '''배리 골드워터의 후보 수락 연설''' || >'''In Your Heart You Know He's Right[br]마음 속으로는 당신도 [[배리 골드워터|그]]가 [[우파|옳은 쪽]]이라는 것을 아시잖아요'''[br]'''A Choice - Not an Echo'''[br]'''메아리가 아닌, 선택''' >---- >[[배리 골드워터]]-[[윌리엄 E. 밀러]] 티켓 슬로건 공화당 온건파와 보수파를 아우르던 [[리처드 닉슨]]이 지난 대선 패배와 1962년 [[캘리포니아]] 주지사 선거 패배로 타격을 받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공화당의 분열상은 극심해졌다. 애리조나 주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[[배리 골드워터]]는 당시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의 거두였는데, 원래 공화당 내 보수파는 중서부 지역과 골드워터가 기반을 둔 [[애리조나]] 등의 지역에 똬리를 틀고 있었으나, 북동부 지역 공화당원들이 점차 민주당처럼 [[리버럴]]화 되는데에 반대하며 남부 및 서부에서도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었다. 특히 민주당의 [[프랭클린 D. 루스벨트]]라는 거물을 상대하기 위해 민주당 탈당파 출신인 [[웬델 윌키]]를 출마시키던 시점부터 6번 연속으로 보수파 후보가 지명을 받지 못했던 지라 64년에는 그야말로 칼을 갈고 있던 상태. 골드워터의 상대는 대표적인 당내 온건파 중 한 명인 [[넬슨 록펠러]]였으나 1963년 결혼한 해피 록펠러와의 혼인 이전 [[불륜]] 추문[* 넬슨 록펠러가 해피 록펠러와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만나고 있었고(불륜), 이로 인해 해피가 전 남편과 이혼하게 됐다는 내용이다.]으로 인해 당내 [[사회보수주의]]자들과 여성들의 지지를 잃으며 자멸했다. 반면 골드워터가 일리노이, 텍사스, 인디애나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우세를 이어나갔고 마지막으로 승부처가 됐던 [[캘리포니아]] 경선에서도 여론조사를 뒤엎고 골드워터가 록펠러에게 3.14%p 차로 신승하면서 사실상 후보 지명이 확정되었다. 공화당 내 온건파들은 골드워터의 공식 후보 지명을 막기 위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[[펜실베이니아]] 주지사인 윌리엄 스크랜턴을 후보로 지지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고, 록펠러 역시 스크랜턴을 후보로 지지했다. 하지만 전당대회에서 2차 투표 끝에 골드워터가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을 확보하면서 당의 공식 지명을 받는 데 성공했다. 공화당 내에서는 무려 24년만에 보수파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게 된 것. 문제는 이렇게 지명된 골드워터가 정작 전국단위 경선 여론조사에서는 지명 당일까지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. ([[https://www.ourcampaigns.com/RaceDetail.html?RaceID=55203&ShowAllMUPoll=Y|1964년 7월 갤럽]], 닉슨 22% - 골드워터 22% 동률) 골드워터는 이렇게 당의 지지를 모두 규합하지도 못한 채로 본선에 나가게 됐는데, 닉슨은 전당대회 지원 연설에서 '우리는 모두 골드워터 공화당원, 록펠러 공화당원, [[헨리 캐벗 로지]] 공화당원, 스크랜턴 공화당원으로 나뉘어져있었지만 우리는 이제 후보를 결정했음으로 하나의 공화당원으로 모여 골드워터를 지지해야한다.'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는데 이 발언이 역설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공화당의 현황을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는 말이었다. 반면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수락 연설에서 "[[자유]]를 수호하기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."라며 온건파 공화당원들을 도발했고 [[부통령]] 후보로도 보수파인 [[윌리엄 E. 밀러]]를 지명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